.. 수지타산 맞지 않은 농사 지어서 뭐 하느냐고, 이 세계화 시대에 도무지 계산 맞지 않은 고생은 할 필요가 없다면서, 그들은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일한 뒤에 시골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 《공선옥-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 말,2003) 122쪽
“계산(計算)이 맞지 않은 고생(苦生)을 할 필요(必要)가”는 “셈이 맞지 않게 애쓸 까닭이”나 “돈이 안 되는 일에 애쓸 까닭이”로 손질합니다. ‘열심(熱心)히’는 ‘부지런히’나 ‘땀흘려’로 다듬고, ‘여행(旅行)’은 ‘나들이’로 다듬으며, ‘떠나는 것이다’는 ‘떠난다’로 다듬어 줍니다.
┌ 수지타산 : x
├ 수지(收支)
│ (1) 수입과 지출을 아울러 이르는 말
│ - 수지 균형을 맞추다
│ (2) 거래 관계에서 얻는 이익
│ - 수지가 맞는 장사 / 이제 와서 손해를 보느니 수지를 보느니
├ 타산(打算) :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 헤아림
│ - 타산이 빠르다 / 타산이 맞다 / 타산에 밝다
│
├ 수지타산 맞지 않은 농사
│→ 벌이가 안 되는 농사
│→ 돈 안 되는 농사
│→ 돈 못 버는 농사
│→ 돈 만지기 어려운 농사
└ …
‘수지타산’이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낱말을 아주 자주 씁니다. 그러면서도 이 낱말이 어떠한 뜻인지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합니다. 나아가, ‘수지’와 ‘타산’이 저마다 어떤 뜻인지 올바르게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니 두 낱말을 겹으로 쓸 테지요.
어쩌면 ‘근심걱정’이라는 낱말처럼 ‘수지 + 타산’을 쓰지 않느냐 싶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뜻이 같은 낱말을 겹으로 쓰면서 우리 느낌이나 생각을 좀더 힘주어 말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수지’와 ‘타산’은 얼마나 쓰임새가 있을까 살펴봅니다. 우리들은 이 두 가지 낱말을 우리 삶 구석구석에 알뜰살뜰 쓸 만한가 헤아려 봅니다. 우리들이 이 두 가지 낱말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 생각이나 느낌을 담아낼 수 없을까 곱씹어 봅니다.
┌ 수지가 맞는 장사 → 벌이가 잘 되는 장사 / 벌이가 좋은 장사
├ 손해를 보느니 → 수지를 보느니 돈을 잃느니 버니
├ 타산이 빠르다 → 셈속이 빠르다
├ 타산이 맞다 → 벌이가 괜찮다 / 벌이가 된다
└ 타산에 밝다 → 돈에 밝다 / 돈벌이에 밝다
1990년이었나 1993년이었나, 나라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컴퓨터’라는 낱말을 걸러낼 토박이말을 빚어내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뜻있는 사람들은 진작 ‘셈틀’이라는 낱말을 쓰고 있었는데 이처럼 쓰이던 낱말은 뒤로 젖히고 아예 새로운 말을 빚겠다고 하며 ‘국민 공모’를 한 끝에 나라에서 뽑은 낱말은 ‘슬기틀’이었습니다. 이렇게 ‘국민 공모’를 마친 다음 ㅈ일보는 ‘이제부터 이 낱말로만 씁시다’ 하고 큼지막한 기사를 썼습니다만, 이런 기사를 쓴 이튿날부터 ‘슬기틀’은 한 마디도 안 쓰고 오로지 ‘컴퓨터’만 쓰더군요. 그러고는 ‘슬기틀’이라는 낱말은 어디에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제법 잘 쓰이던 ‘셈틀’은 덩달아 힘을 잃었고, 그나마 조금씩 퍼져나가던 흐름마저 한풀 꺾이면서 아예 잊혀집니다. 요새는 우리 말 운동을 한다는 분들조차 ‘셈틀’을 거의 안 씁니다.
‘셈’이나 ‘셈속’을 가리키기도 하는 ‘타산’이라는 한자말을 앞에 두고 보니, 지난날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나 이제나 비슷한데, 한국사람들은 한국말 ‘셈’은 ‘산수놀이’로만 여겨 버릇합니다. ‘계산(計算)’이라는 뜻 말고는 없는 듯 여깁니다. 그렇지만 ‘컴퓨터’라는 낱말은 밑말이 어떻습니까. ‘컴퓨터’라는 낱말 밑바탕이 뭐 대단합디까. ‘카(car)’ 같은 낱말도 그렇고요. 다만, 영어권 사람들은 오랫동안 써 오던 ‘카’ 같은 낱말을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물에 거리낌없이 씁니다. 우리로 치면 ‘수레’를 ‘잽싸고 날렵하고 값비싼 자동차’한테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붙이는 셈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아우디나 오피러스를 두고 ‘수레’라 말하지 못합니다. 아니, 이렇게 말할 생각을 꿈에도 품지 않습니다.
┌ 돈 / 돈벌이 / 돈셈 / 셈 / 셈속
└ 금전 / 수지 / 타산 / 경제 / 화폐
가만히 보면, 우리들은 돈을 ‘돈’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금전(金錢)’이니 ‘화폐(貨幣)’니 하고 말합니다. 돈과 얽힌 일을 익히거나 배울 때 ‘돈 배우기’나 ‘돈 학문’이라 하는 법 없이 ‘경제학’이라고만 말합니다. 돈 빌려 주는 일을 할 때에 ‘돈’이라 하지 않고 ‘대부’니 ‘대출’이니, 또 요사이는 영어로 무어라무어라 말하고 있어요.
우리 삶이 삶이 아니고, 우리 모습이 모습이 아니라고 할까요. 말만 말이 아니고 글만 글이 아닙니다. 이 땅이 땅이 아니고 이 나라 사람이 사람이 아닙니다. 제자리를 잃고 제모습을 잃고 제길을 잃습니다. (4338.12.14.물.처음 씀/4342.2.10.불.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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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운 상말
537 : 수지타산 2
.. 아까 농촌에 계시는 분도 말씀하셨지만 자기 땅이 있어도 수지타산이 안 맞아 서울로 올라오겠다는 사람들투성이인데, 땅도 없이 거길 가서 뭘 하겠어요? .. 《민족문학작가회의 여성문학분과위원회 엮음-여성운동과 문학 (1)》(실천문학사,1988) 30쪽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곳을 두고 ‘시골’이라 합니다만, 우리한테 ‘시골’이란 농사짓는 마을을 가리키던 이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난날 도시가 없다고 할 만한 때에도 으레 ‘시골’이라는 낱말을 썼고, 지난날 시골이란 아무래도 ‘서울 아닌 곳’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런 곳은 하나같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마을’입니다. ‘농촌(農村)’은 농사를 짓는 마을을 가리킵니다. ‘농촌 = 시골’이라고 딱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우리들 생각과 발자취와 터전을 돌아본다면, 농사짓는 곳을 ‘시골’이라 하면 잘 들어맞지 않으랴 싶습니다.
┌ 수지타산이 안 맞아
│
│→ 벌이가 안 맞아
│→ 돈벌이가 안 되어
│→ 돈을 벌 수 없어
│→ 돈을 만질 수 없어
└ …
시골살이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은 돈을 만지기 어려운 데에 있습니다. 우리들 어느 누구도 밥을 안 먹고는 살 수 없지만, 우리가 먹는 밥처럼 값이 눅고 푸대접받는 ‘물건’이 없어요. 지난날 박정희 독재정권 때 도시 공장노동자를 싼 일삯으로 부리려는 정책 가운데 하나로 시골 곡식값을 똥값으로 떨어뜨려 시골살림이 무너지게 하여 도시로 흘러들게 하고, 이렇게 흘러들어 넘치는 시골사람을 싼값에 부린다 하여도 얼마든지 새 사람으로 갈아치울 수 있게 하는 한편, 돈없는 도시 공장노동자가 싼값으로 쌀을 사먹게끔 했습니다(이렇게 해도 정부에서는 쌀금을 농사꾼한테 사들일 때보다 훨씬 비싸게 팔았지만). 그러니 나날이 시골은 무너질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요즈음도 다르지 않아요. 쌀값은 찔끔찔끔 오르기는 하지만, 다른 곡식들 값을 보면 살갗과 뼛속 깊이 느끼거든요. 스무 해나 서른 해 앞선 때 배추값과 호박값과 고추값과 무값하고 오늘날 배추값 들을 견주어 보셔요. 거의 똑같습니다.
이처럼 시골살림이 무너질 때에는 우리 나라 밑바탕만 무너지지 않습니다. 시골을 바탕으로 하던 삶이 함께 무너지면서 시골말이며 시골 문화며 온통 무너집니다. 그렇잖아도 대중매체가 시골로 퍼지면서 시골마다 남달리 있던 말씨가 사라지고 이야기가 없어지고 노래가 뚝 끊어졌습니다. 어떤 시골사람도 예부터 이어오던 일노래와 놀이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일본에서 들어온 트로트를 부를 뿐입니다.
곰곰이 살피면, 삶이 망가지고 삶터가 무너진 곳에 말이고 문화고 자취를 감춥니다. 시골은 그예 망가지고 무너졌습니다. 그렇다면 도시는 어떠할까요. 거의 모든 사람이 깃들고 있는 이 나라 도시에서는 어떤 삶이 있고 어떤 문화가 있을까요. 우리들 도시사람이 쓰는 말은 얼마나 말다운지요. 얼마나 우리 말다운지요. 얼마나 우리 넋과 얼을 담아낸 말다운지요. 돈에 넋을 잃고 돈에 얼을 팔아치운 빈털털이 말은 아니온지요. (4342.2.10.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