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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금고황(拘禁苦況)/ 단암 이용태(대한독립 투쟁을 기리며)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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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금고황(拘禁苦況)/ 단암 이용태

임오교변(壬午敎變)은 처음에 만주(滿洲) 영안현(寧安縣) 특무과(特務科)에서 기안(起案)되었으므로 만선각지(滿鮮各地)에서 한때에 검거된 교형제(敎兄弟) 20여인이 영안현(寧安縣) 공서(公署)의 구내(構內)에 특설(特設)한 구류소(拘留所)로 함께 모이는데 적정(敵偵) 조병현(趙秉炫)이 일일이 간증(看證)하였다.

구류소의 구조(構造)는 한 채 5칸의 토옥(土獄)인데 좌우로는 두텁게 벽돌담이 높게 쌓였고 앞뒤에 이중(二重)으로 토벽(土壁)과 목책(木柵)을 세웠다. 칸마다 목책으로 막은 복판에는 허리를 굽히어 출입하는 문이 있으나 낮·밤할 것 없이 굵은 자물쇠를 채우고 그 곁에 밥을 받는 작은 창구(窓口)가 있다. 그 실내(室內)에 길고 높은 연돌(煙突)을 놓아서 갈자리[蘆席] 한 잎을 펴고 그 전변(前邊)에는 두터운 널을 칸에 맞도록 두었으니 제물에 걸상이 되고 목침(木枕) 노릇도 한다. 연돌 앞에는 넓이가 평반(坪半)쯤 되는 바닥에 벽돌을 세워 깔았으며 한편에 오줌누는 양철통을 두었다. 뒷벽위로 복판에는 작은 철창(鐵窓)이 있고 천장에 전등을 장치하였다. 한방에 네사람씩 이름지어 있게 하고 한노(悍奴) 8명-모두 왜놈-이 번갈아 들면서 몽둥이와 죽편(竹鞭)을 끌고 문밖에 오락가락 잔학무도(殘虐無道)한 저희들 소위 감방규칙(監房規則)을 우리에게 실행하려고 그야말로 불면불휴(不眠不休)코 최후발악(最後發惡)을 다 하였다.

그 당시 소조(所措)를 대강 적어본다면 아래와 같다. 첫째로 벙어리가 되어 말이 없어야 하며 또 어기어기 돌아앉아 서로 낯을 못 대하고, 누울 대는 얼기설기 머리와 발을 맞춘다. 앉으면 앉은 대로 해를 보내고, 누우면 누운 대로 밤을 지낸다. 밤 열시 잘 때던지 아침 일곱시 일어날 때에 한번 호령이 떨어지면 3분시 이내에 모두 정돈되어야 한다. 이불과 요는 사람마다 따로 있는데 앉을 때는 반드시 제자리에 걷어 두고 아무리 추워도 이불을 몸에 두르거나 요로 무릎을 덮지 못한다. 연돌(煙突)은 하루 한번씩 불을 때는데 땔 때마다 쥐구멍으로 연기가 너무 많이 피어서 눈물을 흘리게 되고, 또 구들은 더울 때보다 추울 때가 많다. 하루 두끼씩 먹는 조밥은 끼마다 작은 공기로 수북하게 한 공기씩인데 돌이 많고 또 채탕(菜湯)이 한 공기씩이오 혹 소금만 주기도 하고, 그도 없을 때가 있으며 한끼에 숭늉 한공기씩 마신다. 돈 있는 사람들은 소위 사식(私食)을 받아 흰밥에 고기반찬을 한자리에 따로 먹는다. 이것을 볼 때에 인류(人類) 진화(進化)를 꾀하려면 반드시 사회혁명(社會革命)을 먼저 할 것이라 하였다. 또 각수(各수(囚)) 본가(本家)에서 병과(餠果)·어육(魚肉)·혜장 등 식물을 자주 차입(差入)하지만 본인(本人)은 겨우 맛이나 볼 정도이었다. 날마다 조기(早起)시에 수십분 동안의 실내체조(室內體操)와 오후 한두시간씩 꿇어앉아 명상[冥想-회개(悔改)한다는 의미]함은 비록 심신수련(心身修練)의 중요한 과제라고는 하나 기한(飢寒)과 질병(疾病)에 시달린 노쇠자(老衰者)로는 도리어 고역(苦役)될 뿐이다. 매일 점심때에 한번씩 변소 출입이 있는데 반드시 긴 밧줄로 왼팔을 단단히 묶고 일노(一奴)가 두사람을 끌고 윤차(輪次) 왕래하며 각실(各室)의 오줌통은 제가끔 청소한다. 일주간에 한번이나 낯을 씻게 하되 3·4인이 한통물에 같이 씻게 하고 혹 눈[雪]도 퍼다 준다. 이상에 적은 것이 곧 죄수(罪囚)로서 지킬 감방규칙이오 날로 되풀이하는 일상행사(日常行事)이다.

그런데 우리는 날마다 위규범칙(違規犯則)만 하게 되어 갖은 악형(惡刑)을 돌려 받아 규통(叫痛)하는 소리가 밤낮 끊일 새 없었다. 간수(看守)하는 왜노(倭奴)에게 악형(惡刑)을 받는 것이 몸에 고통보다 마음에 치욕(恥辱)됨을 깊이 깨닫는 우리가 어찌하여 그 치욕을 날마다 받게 되는가? 그 수형(受刑)하는 벌목(罰目) 몇 가지를 들면 1.체조할 때 동작을 왜 남과 같이 못하느냐? 2.밥먹을 때 밥과 국을 왜 남을 주느냐? 또 왜 받아먹느냐? 3.앉았을 때에 왜 졸고 코를 고느냐? 왜 머리를 돌리어 서로 웃느냐? 왜 서로 눈을 흘기느냐? 4.명상(冥想) 할 때에 두 무릎을 바로 꿇어야 할 것인데 왜 한 다리를 뻗었느냐? 5.잠을 잘 때에 왜 몸부림을 치느냐? 왜 잠꼬대를 하느냐? 6.설사(泄瀉)할 때에 왜 바지에나 오줌통에 똥을 싸느냐? 하는 등등인데 하나도 고의범(故意犯)으로 볼 것은 아니다.

이제 제6항만을 설명하여 보자. 실내 온도가 항상 체온(體溫)을 보유(保有)할 수 없고 음식의 질(質)과 양(量)이 또한 장위(腸胃)를 조양(調養)치 못하니 복통(腹痛)하고 설사(泄瀉)함은 생리상(生理上)으로 누구나 면치 못할 환증(患症)이어늘 이것을 이해치 않는 간수놈들은 이미 규칙된 시간외에 아무리 애걸(哀乞)하여도 변소출입을 불허하니 그래 인간적(人間的)으로 이 범과(犯科)를 능히 피할 사람이 있을까? 온몸에 땀이 날만큼 참다가 똥을 싼 사람을 다시 기진력진(氣盡力盡)하도록 무수히 난타(亂打)하고는 2·3일씩 밥을 굶긴다. 이것은 그놈들이 조선인(朝鮮人) 사상자(思想者)라면 그저 때려 보자 죽여 보자는 것밖에 아무 뜻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소위 제일심(第一審)의 취조가 끝나는 넉달동안이며 그 동안에 날마다 2·3인 내지 4·5인씩의 개별로 최조할 때에 고문(拷問)하는 각종각양(各種各樣)의 악형은 전부 다 기록할 수 없거니와 우리 일행(一行) 중에 장로(長老)이신 아현대형(亞峴大兄-權寧濬)은 당년 72세로서 체력(體力)이 강왕(康旺)하고 기백(氣魄)이 강의(剛毅)하여 취조(取調)중 불굴(不屈)은 일반이 예측하든 바 몇날동안 취조 끝에 감시노(監視奴)가 취조자(取調者)의 지시에 의하여 혹독한 벌을 특시(特施)하되 대형(大兄)을 감방(監房) 공간(空間)에 '차렷'자세로 서게 하고 백묵으로써 두발밖에 금을 그어 가로대 '일주간을 꼭 이대로 서서 지내야 한다. 만일 요동(搖動)을 하던지 함부로 앉거나 누우면 곧 타살(打殺)하리라'하고 왜노(倭奴) 두놈이 번갈아 감시하더니 약 2주야부터는 다리가 자연 떨리고 발이 조금 옮기게 되매 곤봉(棍棒)으로 난타(亂打)하여 유혈(流血)이 임리(淋●)하고 골절(骨節)맞는 소리가 감방(監房)의 공기(空氣)를 밤낮 긴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대형(大兄)은 간혹 '이놈들이 참으로 사람을 죽이려한다'는 말씀뿐이었다. 그렇게 5주야가 되자 정말 기력이 쇠진(衰盡)하여 자연 혼도(昏倒)하는지라 두놈이 번갈아 밤새도록 난타(亂打)하는데 대형은 정신을 차려 자진(自盡)을 꾀하되 그 두골(頭骨)을 목책(木柵)에 타쇄(打碎)코저 하더니 체번(遞番)한 다른 놈이 특무과(特務科)에 고급(告急)하여 의사를 보내 진찰하고 해벌(解罰) 구명(救命)되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며 대강 적는 오늘에도 몸에 소름이 끼치고 붓대가 떨리거늘 하물며 목도(目睹) 체험(體驗)하던 그 당시에 우리의 심경이 어떠하였을까? 졸렬(拙劣)한 붓으로써 구금(拘禁)중 모든 고황(苦況)을 역력히 상술(上述)치 못하나 다만 이 몇 줄 글월로도 혹시 십현(十賢)의 최후(最後) 참경(慘景)을 상상(想像)할 수 있을는지요. 이 설움과 이 분통을 뼈에 새겨야 할 우리 형제 자매들이시여! 자손만대에 다시는 이런 치욕이 없도록 민족 또 국가사업에 분투수성(奮鬪輸誠)하기를 심원혈축(心願血祝)하는 바입니다.


대한독립투쟁을 기리면서 윗글을 소개합니다.
용서란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 했을 때 용서입니다.
참위환한토록 내환한-한마음의 흼으로 감싸 안아도 용서란 참되게 뉘우쳐 정화가 가능 할 때 참된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적이라는 개념도 이혼이라는 개념도 밖이라는 개념도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은 참으로 밝고 깨끗하게 가늠하여 가려 낼 줄은 알아야 합니다.
0%이상 옳다고 인정하고 0%이상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1가기 보다 더한 0가지 이상은 누구에게나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내환한 한마음으로 해맑은 햇빛 보다 더 맑고 깨끗한 흼햇빛 마음의 흼으로 살아도
옭고 그름은 한결같이 참위환한-내한어버이흼님(우리모든흼님)의 가늠잣대 한할(천법)로써 가늠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참된 역사를 가벼이 여긴자는 조상도 동포도 후손도 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부끄러움도 없이 합니다.
한결같이 조상 동포 후손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이러한 마음은 참한얼 내한흼차려서 똑바로 세워 참되게 살려 나아가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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