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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글짓기)을 못하면 벙어리입니다.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446
논술(글짓기)을 못하면 벙어리입니다.(논술벼락치기)




대입수험생과 일반인들은

논술(글짓기)을 익히기에 앞서서

아래와 같은

세 가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논술을 쉽게 익힐 수 있고

논술을 자신을 위해서

멋지게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논술을 빨리 익히려면

모범논술을 세 네 개를 외워서

이를 응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논술은 공부와 다른데

논술은 주로 창조행위이고

공부는 주로 이해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는

논술을 못한다는 것은

말을 못하는 벙어리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논술을 빨리 익히려면

모범논술을 세 네 개를 외워서

이를 응용할 수 있으면 되는데

만약에

응용을 잘 하지 못하면

특히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응용을 못해서

논술을 못한다고 하면

이러한 것은

공부는 주로 이해행위이고

논술은 주로 창조행위라는 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부는 주로 이해행위이고

논술은 주로 창조행위인 점 때문에

어느 학생이

공부를 매우 잘 해도

논술은 60점을 넘지 못할 수 있고

논술이 60점을 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말을 못하는 벙어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을 읽어보겠습니다.




서구의 대학에서는 글쓰기가 필수과목으로 장려된 것이 오래된 일이지만 우리대학에서 새삼스럽게 글쓰기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한 기초 역량으로 글쓰기 교육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학문적 연구 결과를 전달하는 힘은 다름 아닌 글쓰기로부터 나온다.

글쓰기는 인터넷이나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서고 있다. 기업에서는 전자결제 시스템이 도입되어 자신의 업무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일부 회사에서는 승진시험에서 논술을 채택하고 있고, 몇몇 언론사들이 토익시험 외에도 한국어능력시험 점수를 요구하고 있다. 글쓰기처럼 개인의 종합적 사고능력을 파악하기 좋은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가져온 곳 :

책이름: 글쓰기의 힘

출판사: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출판일: 2005/05/30 ㅣ 쪽수: 464)




위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학문적 연구 결과를 전달하는 힘은

다름 아닌 글쓰기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논술(글짓기=글쓰기)을 못하면

자신의 생각이나 학문적 연구 결과를

전달하는 힘이 없게 된다고 보기에

글쓴이는 논술을 못하면 벙어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논술을 못해서

자신이 말을 못하는 벙어리라는 것은

자신이 유식해도

자신이 유식한 것을 뽐낼 수 없으니까

논술을 못하는 것은

자신이 유식해도

그 자신이 무식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고

사람이

논술(글짓기)을 잘 하면

좀 덜 유식해도

자신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술이

공부와 다른 점은

공부는 주로 이해행위이고

논술은 주로 창조행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공부는

각각의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지식을

이해행위로 이해를 하고

이어서 외우고 나서

이것을 응용할 수 있으면 되지만

논술(글짓기)은

각각의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지식을

조금씩 떼어내어

이것을 짜깁기라는 창조행위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공부는 이해행위이고

논술은 창조행위이기에

공부란 내공은

논술(글짓기)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일 뿐이지

이 밑바탕이 있다고 해서

논술을 잘 하는 것은 아니라서

공부를 매우 잘 해도

논술은 60점이 안되어

논술을 못하면 벙어리이로 이어지고

논술을 잘 하려면

공부를 어느 정도 해야 하는데

글쓴이가

논술에 대한 경험으로 볼 때

공부는 70점을 넘으면

논술을 하는 데는 그다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논술과 공부의 관계에서

공부가 70점을 넘으면

논술은 80점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공부가 60점대이면

논술은 75점을 넘을 수 없고

공부가 80점을 넘어도

논술은 60점을 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논술로 막판 뒤집기란 말이 있는데

논술로 막판 뒤집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공부는 주로 이해행위이고

논술은 주로 창조행위라서

공부가 80점을 넘어도

논술은 60점을 넘지 못하거나

아니면

60점과 70점을 겨우 넘을 수 있고

공부가 70점만을 넘어도

논술은 80점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논술벼락치기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논술은

모범논술을 세 네 개를 외워서

외운 것을

응용할 수 있으면

논술을 잘 하는 것이라서

논술벼락치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논술벼락치기에 걸리는 시간은

보름에서 한 달 사이이기에

논술벼락치기는

보름치기에서 한 달치기를 뜻합니다.




논술은

국어의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이란 네 가지에서

쓰기를 하되

이 쓰기의 틀인

서론과 본론과 결론의 흐름에

각각의 교과서 내용을 통합적으로 짜깁기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와 더불어 설명적인 글쓰기의 또 다른 특질은 가운데 하나가 논리적 구성, 즉 어떤 주장의 구조와 논리의 일관성이다.(줄임) 예컨대 서론(저자의 가설을 제시), 본론(핵심적인 생각과 증거를 제시), 그리고 결론(논의의 종결을 이끄는 곳)에 이르기까지 생각의 논리적인 흐름이 있는가? 만약 그러한 흐름이 없다면, 즉 주장의 요소들과 그들의 연계가 명확하지 않다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글쓰기는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져온 곳 : 김종하(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강사), 미래전쟁과 국방획득, 도서출판 책이 된 나무, 2002, 15-16쪽)




사람들은

누구나 글은

서론과 본론과 결론의 흐름으로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글을 쓸 때에는

서론과 본론과 결론의 흐름으로 쓰지만

몇몇 사람을 빼놓고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서론과 본론과 결론 사이에 논리적 흐름이 좋지 않습니다.




서론과 본론과 결론 사이에

논리적 흐름이 좋지 않은 까닭은

위의 단락에 나와 있듯이

주장의 요소들과

그들의 연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기에

글쓴이는

주장의 요소들과

그들의 연계를 명확하게 해놓은 논술이라고 여기는

이른바

모범논술을 세 네 개를 외워서 응용을 해야

논술을 빨리 익히면서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논술(글짓기)을 창조행위라고 하는 것은

주장의 요소들과

그들의 연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창조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람이

논술(글짓기)를 하면서

창조행위를 여러 번 경험을 했고

이를 매우 잘 했었어도

다음에 또 하려면

주장의 요소들이

글의 주제와 현실변화에 따라서

늘 변화하기에

그들의 연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늘 낯설은 면이 있고

창조행위란 것이 늘 피를 말리는 것이라서

논술(글짓기)도 다른 창조행위처럼 어렵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이런 창조행위를 잘 하려면

모범논술(논술틀)을 외워서 논술틀을 응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글쓴이가

모범논술을 외워야

논술을 빨리 익힐 수 있고

논술을 잘 할 수 있다고 말을 하니까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에서

몇몇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자칫 틀에 박히고

독창성이 부족한 글을 쓰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것은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이

공부는 이해행위이고

논술은 창조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자신이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을 믿고

그냥 에헴만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가

논술을 빨리 익히고 잘 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범논술을 외우라는 것은

모범논술을 외워서

그대로 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암기하는 과정에서

논리, 논리적 흐름, 표현방법 등을

자연스럽게 익히어 익힌 것을 응용하라는 뜻입니다.




공부란 내공은

논술(글짓기)를 할 수 있는 밑바탕일 뿐이지

이 밑바탕이 있다고 해서

글짓기를 잘 하는 것은 아니기에

논술을 빨리 익히고 잘 하려면

모범논술을 세 네 개를 외워서 응용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를 잘 하는 몇몇 학생(사람)들은

모범논술을 세 네 개를 외웠지만

응용을 못해서

논술점수가 60점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까닭은

앞에서 이야기를 했듯이

공부는 주로 이해행위이고

논술은 주로 창조행위이라서

몇몇 학생들이 창조적인 소질이 좀 뒤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 편의 모범논술을

아래와 같이 보여드리니까

아래의 세 편 논술을

외워서

이 세 편의 논술에서 나오는

논리, 논리적 흐름, 표현방법 등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익힌 것을 잘 응용할 수 있도록 해서

논술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만약에

여러분 가운데

공부는 잘 하는데

논술은 못하는 일이 일어나서

여러분이 논술을 못하는 벙어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006. 7. 13.










1. 개미

2. 초등학교 영어교육

3. 힘에 의한 진리왜곡을 풀 수 있는 열쇠







1. 개미




영화 ‘개미’에는 하나하나의 존재는 보잘것없지만 떼로 뭉치면 어떤 적이라도 거뜬히 물리치는 거대한 개미군단의 얘기가 나온다. 개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선천적으로 정해진 각자의 임무를 당연시하며 충실히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범한 한 일개미가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나아가 그 개미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집단에 반항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위기에 부딪힌다.




이 개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것과 작은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제시문 (1)은 큰 것의 폐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큰 조직은 개미집단 내에 개미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개인적 욕구를 묵살한다. 따라서 큰 조직에 속한 개인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인간의 수단화 현상은 개인에게 소외감과 무력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3)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인 ‘소집단’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큰 조직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관련되면서도 구체적으로 인식되기 힘들다. 큰 조직으로 인한 개인의 정신적 혼란은 이러한 특성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대면접촉이 가능하며 우리가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인 소집단의 등장이 필요하다. 또한 소집단은 거대조직의 획일성을 극복하고 우리의 삶에 다양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에 반해 (4)에서는 큰 것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큰 지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큰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지혜와 시간의 경우처럼 크면 클수록 좋은 것들도 있다.













큰 것과 작은 것에 대한 여태까지의 논쟁과는 달리 (2)에서는 아예 큰 것과 작은 것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크기의 구분은 상대적인 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여러 전자제품의 크기는 점점 줄어드는 데 비해 기능은 갈수록 극대화되고 있다. 따라서 대상을 크기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크기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해서 우리가 큰 것과 작은 것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엔 우리의 삶을 구속하면서도 구체적인 실체는 알 수 없는 큰 집단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에 속하는 소집단이나 우리 개인 등 ‘작은 것’도 틀림없이 존재한다. 즉, (2)의 주장은 큰 것과 작은 것의 충돌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1), (3), (4)와 같이 둘 사이의 관계를 대립적으로만 파악하는 것도 옳지 않다.




우리의 신체라는 큰 단위를 구성하는 세포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큰 것과 작은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한 쪽이 존재해야 비로소 다른 쪽도 존재할 수 있다. 위의 개미의 경우에도 집단을 벗어남에 따라 집단 내에서 생활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많은 위험들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그러한 개미의 일탈이 지속된다면 전체 개미집단도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큰 것과 작은 것은 어느 한 쪽이 우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크기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 초등학교 영어교육




최근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이 발표되었다. 점차 세계화, 개방화되어 가는 추세에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다. 특히 경제 특구나 자유무역지구의 학생들에게는 교과의 수업도 영어로 진행되는 영어몰입 교육이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교육정책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세계의 공통 언어라 여겨지는 영어 구사 능력은 곧 한 개인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필수 요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때문에 많은 학생들을 영어를 배우기 위해 조기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떠나고 있으며,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효율성이 떨어지고, 외화유출이 심각해지자 영어를 생활화하는 교육의 방향이 제시된 것이다.




분명 영어를 텍스트 위주로 암기하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선 언어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은 학생이 학습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을 때 효과적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아직 우리말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국어 구사도 미숙한 학생들에게 제 2의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게 된다. 무조건 일찍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의 준비도를 고려한 양질의 언어 교육이 중요하다.




아울러 언어의 특성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언어는 한 나라의 문화적 전통과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조기 영어 교육은 외국에의 문화적 종속이나 무분별한 추종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아직 조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저학년의 경우 모국어를 바르게 익히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언어는 한 개인의 사고와 가치관을 표현하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영어 사용에 대한 압박감이 학생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와 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초등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독창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감성을 자극하여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다. 사회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실질적인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로 인해 교육의 근본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따라서 언어는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더욱 초등교육의 목적은 기초?기본 소양과 올바른 인성 함양에 주력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힘에 의한 진리왜곡을 풀 수 있는 열쇠(우수상)




○○고 최대혁




피타고라스가 직각 삼각형이 밑면의 제곱과 높이의 제곱의 합은 빗면의 제곱과 같다는 그의 정리를 발견했을 때 만약 빗면이 2일 경우에는 밑면과 높이는 무엇이 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당시 수학계의 권위자였던 피타고라스에게 그러한 의문은 피타고라스의 권위를 실추시킬 수 있는 문제였으며 따라서 피타고라스는 그러한 의문은 제기하는 제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여 그들의 입을 막으려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진리를 왜곡하려 했던 것이다.




제시문에 제시된 상황도 이러한 권위에 의존한 진리의 왜곡이 여실히 보여지고 있다.




주인공 비비도는 바로 그러한 현실을 문제삼고 있으며 그 속에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러한 모순된 현실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것들은 관계없이 이단이라 규정하여 자신들의 힘을 빌어 그러한 자신들의 기준에 맞춘 이단자들을 폭력과 억압이라는 강제적 수단으로 규제하는 사제들과 그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명보존을 위해 쉽게 생각을 바꾸어 그들에게 장단을 맞추는 백성들을 비비도는 모두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기회주의적인 태도는 오늘의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한 몸 세우기에 급급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현대인들 그들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옳은 것이고 그것에 반하면 그른 것이라는 규정할 뿐이다.




건설공사의 현장에서 감사원이 부실을 발견하고서도 권력과 연관된 지배층이 힘으로 그것을 무마하려하고 또 자신의 직업을 잃지 않기 위해 쉽게 그것에 동조하는 감사원도 현대 사회에서 힘의 의해 진리를 왜곡하는 한 사례라 볼 수 있으며 그러한 현상은 보수성과 무사안일주의의 단점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관료제 사회에서 더욱 흔한 현상이다.




이처럼 위선의 모습에 장단을 맞추고 그른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기반유지를 위해 그것을 숨기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지배층의 개방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진리를 왜곡하는 일은 사회를 발전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사회를 퇴보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권력구조의 틀에서 벗어나 더 나은 이론이나 확실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창의력을 낳게 할 수 있는 기본자세가 될 것이다. 이러한개방자세는 학문하는 사람 그리고 정치가들에게 더욱 필요할 것이며 자신보다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자세를 배우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주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힘에 의해 자신의 의견을 쉽게 변경한다면 우리 사회는 힘에 의한 억지가 만연할 것이며 진리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에 대항하여 그 힘에도 굴하지 않고 지동설을 진리로 탄생시킨 갈릴레이의 자세가 바로 그것인 것이다.

현대는 아직도 비비도가 살고 있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과 권력 또는 돈에 의해 쉽게 진리가 왜곡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진리라면 끝까지 그것을 관철할 수 있는 주체의식을 가져야 하며 또한 옳지 않은 일이라면 진리에 기꺼이 자리를 내줄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즉, 부끄럽지 않은 삶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삶만이 오늘날 힘에 의한 진리왜곡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가져온 곳 : 온고을 글터, 전주시립도서관, 2000년, 66~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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