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한글지키기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김만오 부장판사)는 한글운동 단체들과 개인들이 국민은행과 케이티(KT)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개인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간판에 ‘KT, KB’라고 영어만 적고 한글을 병기하지 않은 것은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부 방송과 신문에서 이 옥외광고물 법이 시대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법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외국어를 쓰는 게 잘못이 아닌 것처럼 보도하기도 한다. 또 피고 쪽인 케이티는 “기업이 글로벌화되는 최근 추세를 고려할 때 양해해줄 수도 있는 부분으로 생각된다”며 억울해했고, 국민은행 쪽 변호사는 “훈시규정이 아니라는 재판부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법을 지키지 않고도 잘못인 줄 모르는 회사도 문제이지만 그걸 눈감아 주고 편들려는 일부 언론과 변호사의 태도가 더 큰 문제로서, 분노를 느낀다. 언론과 변호사는 이 나라 지배층에 들고, 나라를 이끄는 책임이 막중한 집단이자 사람들이며, 세상의 잘잘못에 바른소리를 내야 할 책임이 있는 이들이다. 세계화가 나라의 법과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제 나라의 말·글을 버리고 남의 말만 섬기는 일이란 말인가!
버거킹은 영문과 한글을 함께 쓰고, 맥도날드는 한글로만 쓴 간판을 달고 있다. 외국회사는 법을 잘 지키고 한글을 즐겨 쓰는데 한국 회사가 법과 제 나라 글자를 무시하고 있다. 법을 어긴 자들이 반성하고 부끄러워 할 일인데 오히려 억울하다니!
광고물에 문자 표시방법을 규정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제13조는 “광고물의 문자는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함을 원칙으로 하되, 외국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한글과 병기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거리에 나가 보면 외국 회사인 버거킹은 영문과 한글을 함께 쓰고, 맥도날드는 아예 한글로만 쓴 간판을 달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로마자 ‘KB’는 대문짝만하게 ‘국민은행’은 콩알만하게 쓰고 있다.
오히려 특별한 외국회사는 법을 잘 지키고 한글을 즐겨 쓰는데 한국 회사가 법과 제나라 글자를 무시하고 있다. 법을 어긴 자들이 반성하고 부끄러워 할 일인데, 오히려 재판부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며 억울해하다니 말이 안 된다. 더구나 국민은행, 한국통신(케이티)이 어디 사사로운 이익만 추구하는 개인기업인가? 그 태생이 다 국민의 돈과 세금으로 세우고 커 온 공공기업들이었다.
그걸 눈감아주고 편드는 언론은 자기들도 법과 우리말글을 우습게 보기 때문인가? 아니면 얼빠진 사람들이어서인가?
요즘 중국 정부가 고구려 역사를 제 나라 역사라고 우긴다고 분노하는 이들이 많다. 참으로 답답하고 분통터지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40년 전 학생 때, 우리나라가 강대국 사이에서 고구려 역사 왜곡보다 더한 불행과 아픔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대비책으로 국어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밤낮으로 겨레얼과 말글을 지키고 빛내어 나라를 튼튼하게 할 양으로 뛰고 또 뛰었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큰 한국병인 외국말 떠받들기 풍조가 심해지면서 외국글 간판이 무분별하게 늘어나서 그걸 바로잡을 법을 만들고 잘 지키길 바랐지만 김영삼 정권의 얼빠진 세계화 추진과 월드컵대회에 밀려 옥외광고물 관리법 한글 쓰기 규정이 헌신짝 취급받고 있었다. 그래서 법과 나라 글자가 무시당하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여러 해를 정부에 건의하고 기업에 호소했지만 오히려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지 별 소용이 없었다.
이 문제로 내가 겪은 정신과 물질 피해는 대단히 크다. 이 나라가 제대로 될 나라라면 법이 그 아픔과 절망을 알아줄 줄 알았지만 재판부에서도 무시해서 섭섭하다. 그러나 재판부가 그 법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은 그 잘못을 인정하고 법을 지키고 우리말글을 살리는 일을 함께 하자. 이 일은 법 이전에 시대 사명이며, 국민의 의무요 책임이다. 우리가 이 사명과 책임을 다할 때 어떤 큰나라도 우릴 깔보지 못할 것이다.
이대로/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