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 생각하자 - 테크노동 사태를 보며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정책위원)
대전시 유성구에 새로 만들어지는 행정동 이름을 지으면서 ‘테크노’라는 영어 단어를 넣은 일이 있었다. 2009년 9월에 유성구는 설문조사 결과에 근거해 이 행정동 이름을 ‘테크노동’이라 정하고 조례개정을 추진했다. 이 이름에 많은 한글단체가 반발하자 유성구의회에서는 ‘관평테크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수정한 조례개정안을 2010년 4월에 의결했다. 그런데 2010년 6월 지방선거로 의회 구성이 바뀌면서 7월 22일에는 다시 ‘테크노’를 뺀 ‘관평동’으로 바꾸는 조례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일부 지역주민의 반발이 있다고 한다.
지역주민의 반발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매우 짧은 시기에 결정이 뒤바뀌면서 혼란을 겪었을 게 분명하다. 처음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테크노동, 그다음엔 관평테크노동, 그리고 이제는 관평동이니, 주민의 정체성 혼란에 따른 불만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 주민의 반발이 혹시라도 ‘지역이기주의’라는 오해를 부를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관평동 안에 ‘테크노’라는 이름을 붙인 기관도 있긴 하지만, ‘테크노 밸리’라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주민이 애초 설문 조사에서 ‘테크노’라는 이름에 무게를 실었다는 사실이 이런 우려를 낳는다. 동네 이름을 딴 아파트 단지는 있어도 아파트 이름을 따서 동네 이름을 짓는다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이게 상식적이냐 아니냐는 문제를 떠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동 이름이 단독 가구의 문패나 아파트 단지 이름, 업소 이름과는 달리 공공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관평동 주민 모두라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 전체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방행정의 재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생활의 모든 면에서 우리 국민 전체가 서로 의존하고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함께 살아가려면 공공의 자산을 지켜야 한다. 국가 전체 차원에서 보자면 그 공공 자산 중 가장 값진 게 우리 말과 한글이다.
세계화 시대에 케케묵은 생각이라고 비판하는 이도 있으리라. 하지만, 경제와 문화의 세계화를 우리가 당연시한다 해도, 어떤 세계적 위기가 왔을 때 그 해결 주체는 역시 개별 국가 차원일 수밖에 없다. 하나의 의회를 구성한 유럽연합이 그리스의 금융위기 앞에서 무력해졌던 상황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 해결의 주체가 일차적으로 국가 단위라면 평소에 국가 단위의 정체성이 흐트러지는 건 우리 국민 모두의 생활을 불안하게 만들 위험이 크다. 대한민국은 단일한 모국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언어가 매우 강력한 정체성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만일 관평동이 관평테크노동으로 남아 있었다면, 다른 곳에서도 이런 비슷한 사례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관평테크노동을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을 것이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지방행정 단위의 이름이 외국어로 지어지기 시작하면 그 여파는 공공언어 전반에 퍼질 터이고, 국민 중에는 이 때문에 혼란과 문화적 위축감을 느낄 사람도 많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공공분야에서 사용해야 할 언어의 경계선을 미리 그어야 했건만, 이 사태의 초기에 이런 문제의식은 없었던 듯하다. 지방정치, 지방행정을 꾸려가는 분들이 좀 더 넓은 안목으로 공공성과 언어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번과 같은 혼란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테크노’라는 말에 애착을 갖는 주민이 있다면, 넓은 의미의 공공성, 우리가 자손들에게 물려줄 문화적 유산,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면을 고려해 이 사태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