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행위는 1910년 나라를 팔아버린 매국노(賣國奴)들의 행위와 진배없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국호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던 명칭을 국호라고 조작하고 그리고 그 조작한 명칭을 이용하여 일본의 속국이 국호로 사용하던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을 우리나라의 국호를 줄인 것으로 조작한 것은 우리나라가 10세기이전에도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미국이나 필리핀의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우리나라가 10세기이전에도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이것을 두고 그들이 우리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얼버무리고 수정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韓國)을 대한민국(大韓民國)과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준말이라고 조작한 것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때문에 수정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한국(韓國)이 일본서기에 기록되어있는 나라하고 관련이 없는 명칭이라는 것을 제시하던지 아니면 한국(韓國)을 우리국호의 준말이라고 한 것이 조작된 것임을 밝혀야 할 것인데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은 일본서기에 10세기 전에 일본의 속국이 국호로 사용하던 명칭인데 일본은 이 나라를 우리나라라고 하면서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였고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체결한 대부분의 조약 등에서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으며 1903년 12월에는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헌병대의 명칭을 조선주차헌병대(朝鮮駐箚憲兵隊)에서 한국주차헌병대(韓國駐箚憲兵隊)로 변경하고 의병 15,000명을 살육하였는데 이곳에서 곤욕을 치른 우리 애국자들의 뇌리(腦裡)에 한국(韓國)이 대한(大韓)과 관련이 있는 명칭일 것으로 각인(刻印)시켰을 것입니다.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본은 대한(大韓)이라는 명칭은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고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은 사용에 제한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韓國)이 우리나라의 국호인 것처럼 유도하였는데 1930년에는 친일파 사학자 최남선(崔南先)이 한,일문화동근론(韓日文化同根論)이라는 것을 써서 조선방송을 통하여 방송토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韓國)을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준말이라고 조작을 했기 때문에 졸지에 대한민국(大韓民國)은 10세기 이전에도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청소년 들이 미국에 유학 가서는 우리나라가 10세기 이전에도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배우는 한심한 현실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을 한국(韓國)이라고 하게된 과정을 살펴보면 일제가 우리민족에게 한국(韓國)이 우리국호로 오인토록 한 것과 같은 과정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일본은 역사기록을 변조하고 한국(韓國)을 우리나라라고 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최남선이 한국(韓國)은 대한(大韓)을 간단하게 한 말 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1894년에 체결한 잠정조약내용에서 한국(韓國)이라는 명칭들을 모두 조선(朝鮮)으로 변조하여 서울六百年史에소개하고 있는데 이렇게 변조할 수 있었던 것은 최남선이 서울시사 편찬에 관여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1894년 우리나라 국호는 조선(朝鮮)이었는데 한국(韓國)이라고 하면 거짓말이라는 것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한(大韓)이라는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을 국호라고 조작하였는데 이것은 한국(韓國)대한제국(大韓帝國)을 줄인 것이라고 하기 위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나) 우리나라 국권을 강탈한 일본의 대한(大韓)이라는 명칭은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이 우리나라의 국호로 유도하였는데, 1988년 국어사전에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을 처음 수록하면서,
'한국(韓國) 1, 대한민국의 준말, 2, 대한제국의 준말. 한(韓).'
'대한(大韓) 1, 대한제국의 준말, 2, 대한민국의 준말. 한(韓).' 이라고 조작하였는데 이것은 대한(大韓)은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준말로 사용하는 것이 우선이고 한국(韓國)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준말로 사용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여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줄일 때는 한국(韓國)으로 사용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을 대한(大韓)이라고 하였지 한국(韓國)이라고 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것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노랫말들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을 대한(大韓)으로 호칭하였지 한국(韓國)으로 호칭한 것이 없다는 것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대한(大韓)은 대한 국(大韓 國)의 국호인 동시에 대한 국(大韓 國)과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통칭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특히 1965년에는 한일협정(韓日協定)이 체결되었는데 이 문서에는 한국(韓國)또는 한국어(韓國語)라는 명칭들이 사용되었으나 우리 국어사전에는 이러한 명칭들이 수록되지 않고 '한국은 대한민국의 준말'이라고 조작할 때까지 23년 동안 방치한 것입니다.
이때 우리나라에서는 자신들의 친일행적을 감추기 위하여 한국(韓國)을 대한(大韓)의 약칭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로 대한(大韓)이었던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이 국호라고 조작하고 1894년에 체결되었던 조약 문에서 한국(韓國)으로 되어있던 것을 조선(朝鮮)이라고 변조하는 등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은 당시는 물론 23년 동안 국어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대한민국(大韓民國)과 한국(韓國)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大韓民國)과 일본(日本)간의 수교협상은 1951년 10월20일 연합군최고사령부(SCAP)의 중재 하에 도쿄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나 별다른 진전 없이 흐지부지 되었다가 1962년 11월12일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일본 외상간의 회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나 회담 진전 과정을 비밀에 부쳐 `6.3사태'라는 격렬한 회담 반대시위를 초래하기도 했으나 1965년 6월22일 당시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외상이 도쿄의 일본총리 관저에서 `한일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종결되었는데 이것을 한일협정(韓日協定)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大韓)과 일본(日本)간에 체결한 협정을 한일협정(韓日協定)이라고 하고 우리나라를 한국(韓國)으로 지칭하였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일본서기를 변조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할 때부터 우리나라를 가라쿠니( からくに;韓國)라고 지칭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체결한 대부분의 조약에서 우리나라를 한국(韓國)이라고 지칭하여 조약을 체결하였고 국권을 강탈하고는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조선(朝鮮)을 약칭으로 선(鮮)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한국(韓國)을 대한 국(大韓 國)의 약칭인 것처럼 호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한국(韓國)을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약칭인 것처럼 인식시켜야 하는 것은 절실히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한(大韓)과 한국(韓國)이 관련이 없는 명칭이라는 것이 판명될 경우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체결한 모든 조약들이 무효가 되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국가 간의 협정 문을 체결할 때는 자구(字句)와 명칭(名稱)에 대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마련입니다. 때문에 국어사전에 수록되어있지 않는 자구나 명칭을 사용할 경우에는 전문기관에 사용여부에 대하여 자문을 받아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 문서에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모두 국문학계의 책임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회담이 진행 중이었던 1963년 12월 17일-1964년 5월 9일까지 '한국(韓國)은 대한(大韓)을 간단하게 한말'이라고 거짓말을 한 최 남선의 동생인 최 두선이 국무총리를 했는데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 일본은 우리국민을 감시하는 기관의 명칭을 한국(韓國)으로 변경하였고 또 방송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국호가 한국(韓國)으로 오인토록 선전하였는데 우리는 공공단체나 공기업의 명칭을 한국(韓國)으로 변경하였으며 방송국의 명칭을 한국(韓國)으로 변경하여 국민들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을 한국(韓國)으로 호칭하도록 유도 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