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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흰색 물감 같은 자괴감이 온몸에 퍼지다.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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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흰색 물감 같은 자괴감이 온몸에 퍼지다.





언어에 대해 고민해 온 것도 꽤 되었습니다. 벌써 12년이란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좋게 얘기하면 근성인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보단 정신병적 집착이라고 말하는 것는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글쎄요, 뭘 하드래도 미쳐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또 진짜로 미칠 정도로 푹 파고들지도 못한 걸요.
언어란 것이 도대체 뭔지, 그땐 정말 무지무지 궁금하더라구요. 일반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유전적으로 보자면, 뭐 얼마나 차이가 나겠어요? 오히려 감각적인 측면으로 보면 인간의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사실 훨씬 더 많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요, 삽시간에 장악해 버렸잖아요. 어디 감히 인간의 말 한 마디에 찍 소리라도 낼 수 있겠나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인간이 지구를 이길 수 없어서 이런 얼토당토 않은 추위에나 덜덜 떨고 있고 심지어는 발 간지럽게 지진에나 떨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어디? 보세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란 사람은 판도라 행성조차도 몽땅 차지해 버렸는 걸요? 딸랑 아들(제이크) 하나 내려 보내서 말이에요. ㅎㅎ, 머지 않아 그곳도 이곳 꼴이 나고야 말겠지요.

사실 인간의 말에서 추상명사만 빼도 말이 말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런 모호한 말들은 시간과 연결돼 있고, 또한 시간은 수(數)에 정확하게 일대 일로 대응되어 있다 보니, 수(數)가 무너지면 당연히 언어도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겠지요. 물론 이와 같은 연결고리에 대해 새로운 고차 방정식을 만들어 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머리 아픈 아이들 머리만 더 아프게 할 테니까요.

추상이고 뭐고, 암튼 이런 복잡한 거 더이상 설 하지 않을께요. 가만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상추 따기도 겁나게 허리 아픈데, 추상이 밥 맥여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상상 공상 멍~상이라도 할려면, 차라리 카메론 감독같이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들고요. 돈 많이 벌잖아요. 그거 땡전으로 다 바꿔서 쌓으면, 혹 알아요, 자본주의도 살 수 있을지 말이에요.

말이 좀 샜는데요, 암튼 이놈의 언어란 것이 도대체 뭔지 하고 생각하다 보니까, 제가 영어로 말을 하고 영어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이성의 태반을 오직 한글로만 소리치고 있는 게 아니냐?'하는 생각이 문뜩 들기도 하더란 말입니다. 그런데요, 웃기는 건, 가만 생각해 보니까, 도대체 한글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ㅎㅎㅎ 진짜로 웃기잖아요. 저도 공부랍시고 한다고는 했는데, 아니요 공부고 뭐고 떠나서요, 이거 진짜로 웃기는 일 아닌가요? 평생 생각하고 써온 우리 글에 대해 자신 있게 아는 게 단 하나도 없다니요? 이게 말이 되나요?

충격이였어요. 순간, 이성이 멍~해져 버리는데, 차마 할 말이 없더라구요. 글쎄요, 이런 경우에 가끔은 흰색 물감 같은 자괴감이 온몸으로 쑤욱 퍼지는 전율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아마 그래서요, 그래서 기존의 한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슬슬 반항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세종께서 직접 저에게 설명해 주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존의 수많은 말씀들이 '한글은 이런 것이다'하고 저의 건방진 뇌리를 한 방에 강타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검정 유화물감이 퍽 터져 허파를 채우듯 턱 하고 숨이 막히는데 진짜로 어찌나 답답하던지요.

그래서 정말 될 수만 있다면, 세종대왕 님과 접신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대왕 앞에 무릎 꿇고 빌고 빌면 이 어리석은 백성에게 힌트라도 하나 주시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500년의 물리적 시간이 문제라면 조금더 기다려 볼 수도 있겠지요. 정말 타임머신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어찌 첨단의 기술을 타고 감히 대왕 님 앞에 다가갈 수가 있겠습니까? 당신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식은 결코 기술이나 화려한 수사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압니다.

저의 짧은 식견으로 풀어내는 한글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왕 님의 뜻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님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어 발버둥치는 이 누추한 아이의 심정만은 너그러이 용서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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