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절 초
유동삼
한겨울 눈 속에서 뿌리가 안 어는 풀
엄마처럼 무더움 다 이겨내고 꽃 피운다.
향기로 가을을 적셔 단풍을 만든다.
“우리 나라 들꽃 가운데서 으뜸가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으면 나는 서슴치 않고 구절초라고 말한다.
산국화는 키가 커서 쓰러지지 않는 경우가 없다. 꽃 향기는 구절초보다 짙으나 꽃송이가 아주 작아서 볼품이 없다.
무더기로 심고 꽃 피기 전에 몇 번을 줄기를 잘라내어 키 크는 것을 억제하고 쓰러지지 않게 해 보았다. 그랬더니 꽃 핀 그 가운데에 들어서서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고왔다.
그런데 구절초는 그 꽃송이가 훨씬 크다. 코스모스 정도다. 아주 하얀 것도 있고 자세히 보면 속이 옅은 분홍을 띤 것도 있다. 그 모습이 아주 고상하다.
약 10년 전 일이다. ㅊ여고 화장실에 예쁜 꽃 그림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구절초’ 사진인데 ‘들국화’라고 했다. 그림 크기로 보아 어느 잡지에서 떼어서 붙인 듯하다. 들국화는 하나의 꽃이름이 아니다. 과일은 어느 과일의 이름이 아닌 것과 같다.
모종은 아무 때나 해도 몸살을 하지 않는다. 꽃 피기 전은 물론이고 꽃핀 다음에도 그렇다. 이것은 한약재로도 쓴다. 아기 낳은 뒤 조리를 잘못해서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 이것을 9월 9일(음력)에 꺾어서 다른 약재와 조제해서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이것을 꺾으러 다니는 이도 있다. 시장 길가에 이것을 말려서 다발을 만들어 약쑥, 익모초 등과 함께 팔기도 한다.
요즈음은 시골 길가서나 산에서나 들에서 이것을 거의 볼 수 없다. 보는 대로 꺽거나 뽑아 간다.
한번은 초등학교 동기생인 ㅂ 님이 우리 복지원에 구경 왔었다. 그는 어렸을 때 이후 이 지방을 아주 떠난 일이 없다. 지금은 할머니가 됐다. 내가 안내하면서 여러 가지를 보여 주는데 그가 구절초 몇 대를 꺾었다.
“왜 그것을 꺼지?”
물었더니
“버릇이 돼서 이것만 보면 저절로 손이 가네요.”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함께 웃었다.
약 10년 전 일이다. 경사가 아주 심한 곳에 이 꽃 한 무더기가 아름다운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나 아니면 가을은 별것 아닐걸!”
하고 자랑이라도 하는 듯이 단정한 흰옷차림을 한 여인네처럼 피어 있지 않은가!
이것이 길가에 피었다고 하면 누구 손에 무참히 뿌리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내 힘으로는 그 가파른 데에 내려가서 캐 올 수가 없다. 관리인 구씨가 공군 출신이라고 하면서 삽 한 자루만 들고 조심조심 내려갔다. 뿌리까지 잘 파서 무사히 올라왔다. 양지바르고 여럿이 잘 볼 만한 곳에 넷으로 갈라서 공들여 심었다.
어두운 방에 촛불을 켠 듯 주변이 환해진 느낌이다.
이것은 뿌리로도 번지고 씨로도 번진다. 그 씨가 여물 때를 놓치지 않고 다 따서 말 려서 종이봉지에 넣어서 보관했다.
자연대로라면 씨가 바람에 떨어져서 겨울 추위를 땅에서 지낼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받아 놓은 씨를 절반은 빈땅에 뿌리고 덮었다. 남은 것은 이듬해 이른 봄에 뿌렸다. 두 방법이 다 괜찮았다.
가을에 뿌린 것은 추위 닥치기 전에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렸다. 얼어 죽지 않으려는 본능으로 깊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봄에 뿌린 것보다 추위를 이겨낸 탓인지 더 무성하였다. 봄에 뿌린 것은 그 해 가을에는 꽃이 피지 않았는데 전 해 가을에 뿌린 것은 꽃이 피었다.
이 씨를 옹벽 위 아주 토박한 곳에도 뿌려 보았다. 2년째부터 가뭄에 대비하느라고 뿌리가 너무 실해져 그 뿌리끼리 얽혀서 꽃이 다른 것보다 작았다. 그냥 놓아 두었더니 3년째에는 스스로 망해서 꽃대도 올라오지 않았다. 건 땅으로 옮겨심는 것이 좋을 뻔했다.
화분에 건 흙과 썩은 닭똥을 섞어서 꽃모를 심었더니 아주 잘 자라고 꽃송이도 더 예뻤다. 손님에게 방문 기념으로 화분 한두개를 차에 실어 주기도 했다.
또 대전시 시민 공원에서 우리 꽃 전시회를 할 때는 아직 꽃은 피지 않았으나, 구절초, 마타리(패장) 등과 함께 출품하기도 했다.
시민이나 학생들에게 우리 꽃 하나라도 관심을 더 가지게 하고자 해서였다.
이것이 어릴 때 잎과 쑥과 그 모양이 매우 비슷하다. 자원봉사하러 오는 학생들에게 쑥을 뽑아 내는 일을 시키고자 했다. 두 잎의 다른 점을 알려 주고, 구절초는 뽑지 않게 했다. 조심성이 없어서인지 실수를 자주 했다.
그래서 이 일은 내가 하거나 관리인에게만 맡겼다.
문인들 행사 때 이것을 한두 대 꺾어서 시들지 않게 작은 병에 꽂아서 가지고 나가면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었다.
시화전에 이 꽃을 큰 병에 두 개를 준비해서 내 작품 ‘구절초’ 옆에 놓고 이름표를 만들어 보는 이들이 그 꽃이름을 알게 한 적도 있다.
한글 학회에서 펴낸 한글 큰사전 여섯째권 부록에 일본말 식물 이름과 우리말 식물이름 일람표를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
‘시베리아노기쿠=シべリアノギク’는 ‘구절초’라고 나온다.
'노기쿠=ノギク=野菊'
그러니까 ‘들국화’는 곧 ‘구절초’로 착각하는 것은 바로 여가서 비롯된 듯하다.
초등학교 6-2 국어책을 편찬한 연구진, 편집진이 구절초를 들국화라고 했다.
“들국화를 꺾어서 단추 구멍마다 꽂았다” 는 데가 있다. (6-2 21쪽) 1997년 이후 몇 년 동안 초판 그대로 인쇄하였다.
광복 이래로 황순원 지은 소나기가 처음은 고등학교 국어 1학년에 다음은 중학교 3학년에 현재는 중학 국어 1-2에,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실렸다. 소년이 소녀에게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이 나온다. 이 들국화는 각 국어 사전마다 가을에 저절로 들이나 산에 나는 국화류:쑥부쟁이, 구절초, 감국, 산국 따위의 총칭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니까 “이게 들국화”는 있을 수 없다. “이게 감나무”해야 하는데 “이게 과일나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나는 사전을 찾아 보는 일을 자주 한다. 꽃이나 풀 이름이나 나무 이름 등을 국어 사전에 있는 대로 표준어를 가려 쓴다.
초등학교에서는 흔히 뒷마당에 공부꽃밭(학습원)을 만들었다. 참 잘하는 일이다.
공부꽃밭에 쑥도 심어 놓고 ‘쑥’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놓으면 어린이들이 이것을 다 알 것이다.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화’도 이름표를 각각 붙여 놓은 일을 초등학교마다, 아니, 중학교에도 만들어 놓았으면 좋을 것이다.
내가 언젠가 구절초 씨를 받아서 몇 학교에 나누어 주기도 하고 묘포를 만들어서 꽃모를 몇 포기씩 나누어 준 일도 있다.
어느 해인가 꽃씨 뿌리는 4월경 구절초 씨를 한 되 정도를 가지고 시내 ㄷ 교육청을 찾아갔다. 교육장도, 국장도, 과장도 자리에 없었다. 어느 장학사를 만나서
“이것을 관내 각 학교에 고루 나누어 주 면 수고스럽기는 하나 학교에서는 좋아하 지 않을까요?”
하고 부탁한 일이 있다.
“아주 고맙습니다. 잘 나누어 주겠습니 다.”
그 결과를 알아볼 겨를은 없었다.
“우리 학교는 늦게 가서 얻어 오지 못했 습니다. 직접 주실 수는 없습니까?”
전화가 자꾸 왔다. 구름이 끼고 내일 비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학교에 연락해서 꽃모를 가져가게 했다.
또 어느 해는 우유 상자에 구절초 꽃모를 심어서 구절초에 대한 설명을 써서 복사한 것과 함께 복지원 행사 때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300개 정도였는데 하루에 다 나갔다.
오는 4월에 또 구절초 꽃모 나누어 주기를 해 볼까 한다. 다른 해처럼 지난 가을에도 이 꽃씨를 잔뜩 받아 놓았다.
우리 나라 시골에서는 구절초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몇 해 지나면 구절초 구경을 못 해서 이 꽃을 아주 잊을지도 모른다. 그 때가 염려스럽다.
그래서 귀찮은 일을 참으면서 하나의 봉사활동으로 여기고 틈틈이 구절초를 가꾼다.
어제는 문인들 행사에서 ㅈ대학교 ㅅ교수를 만나서 구절초 씨를 그 설명서와 함께 주고 몇 해 후에는 ㅈ대학교 안팎이 구절초가 많이 피게 해 보라고 했다. 대학생들도 구절초를 모를 것이라고 공들여 가꾼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