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예산 부족과 사회적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키르기스스탄의 지도자들은 자국 역사상 가장 값비싼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19세기 여자 영웅의 이야기가 주민들의 문화적 일체감을 고양시켜 주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그 서사의 국민 형성과 통합 목표는 지나치게 야심적이며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1991년 독립을 획득한 이래 키르기스 지도자들은 문화적 사회적으로 서로 이질적인 북부와 남부 지역을 화합해야 하는 딜레마와 싸워 왔다. 그러나 공동의 국가정체성을 형성하려는 시도는 통상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유일한 국민적 영웅은 신화적인 마나스이다. 그러나 마나스는 2010년 종족 분쟁 후에 영향력을 확대해 온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조작되는 경향이 있다. 그 이후로 정부는 국가 상징들에 귀한 재원을 낭비하고 국기의 색을 바꾸는 것과 같은 비용이 많이 들고 비실용적인 기획으로 장난질하고 있다는 반복된 비난을 받아 왔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영화의 주제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보기 드문 인물인 쿠르만잔-다트카(Kurmanjan-Datka)이다. 그녀는 1811년 페르가나 계곡의 중심이며 오늘날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남부 지역들을 포함하는 코칸트칸국에서 태어났다. 당시 쿠르만잔-다트카가 영향력 있는 봉건 영주를 위해 그녀의 약혼자로부터 도망한 결정은 오늘날 신부납치 반대운동을 펼치는 활동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녀의 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코칸드 칸으로부터 알라이 산맥 일대의 지도자로 인정받는다. 후에 짜르의 군대가 남쪽으로 진군해 올 때, 그녀는 다른 키르기스 씨족 지도자들과 함께 러시아의 종주권을 인정하였다. 그녀의 아들이 밀수혐의로 짜르의 관리들에게 체포되었을 때, 그녀는 독립 후 키르기스 지도자들이 흔해 했던 것과는 다른 선택을 하였다. 자기 가족의 이익보다는 주민들의 이익을 우선시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불복하여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짜르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아들의 처형을 수용하였다.
쿠르만잔-다트카가 살고 통치했던 남부지방 출신 몇 몇 의원들은 지난 봄 영웅의 이름을 딴 영화 제작에 더 많은 지원을 하도록 정부를 압박하였으며 이에 성공하였다. 알라이구의 출신으로서 민족주의 정당 <아타-주르트당>의 의회 지도자인 아크마트벡 켈디베코프는 정부가 국가의 이념적 가치를 보존하는 데 돈을 아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키르기스 통신사 <KNews>의 인용에 따르면, 그는 정부가 현재까지 투자한 140만 달러의 돈을 영화관 개봉을 통해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화 제작은 2011년에 시작되었으며, 관계당국은 그 해를 ‘쿠르만벡-다트카의 해’로 선포하였던 바 있다. 이에 반해, 독립 영화감독 에밀 주마바에프는, 내년 초로 예정된 개봉에 앞서 미리 영화를 평가하기를 저어하면서, 켈디베코프의 낙관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주마바에프는, 카자흐스탄에서 쿠르만잔-다트카와 비교하여 25배의 예산을 들여 제작했던 유사한 애국 역사 영화 ‘노마드’가 2005년 개봉되었을 때, 서방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던 것을 상기시킨다.
쿠르만잔-다트카에 대한 책을 쓴 역사가 블라디미르 플로스히흐(V. Ploskhih)는 그녀 시대의 사회는 국민적이 아니라 부족적이었다고 현대와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런데 오늘날에 조차도 키르기스인들은 역사적이든 현대적이든 자신의 씨족 지도자들에게 충성심을 갖고 있으니 국민국가 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쿠르만벡-다트카의 이야기에서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더 좋든 나쁘든 키르기스인들의 유일한 민족적 영웅은 마나스라고 플로스히흐는 덧붙인다.
주마바에프 감독이 볼 때, 만약 키르기스스탄이 과거를 인물을 되살려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면,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이 있다. 그는 키르기스인들에게 쿠르만벡-다트카보다 조국에 관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그 인물은 1860년 대 말에 러시아의 지배에 복종했던 최후의 키르기스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인 북부 부족의 장 우메탈리(Umetaly)이다. 그는 처음에 코칸드칸국에 충성을 맹세하여 러시아인들을 공격하였다. 그 다음에는 중국인들로 충성의 대상을 바꾸고는 자치를 추구하면서 다른 키르기스 씨족들과 내내 전쟁을 벌였다. 마침내 자신의 지지자들이 지치고 감소하자 우메탈리는 다시 대상을 바꾸어 러시아인들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주마바에프 감독은 “사람들이 만약 그와 같은 줄거리로 만들어진 영화를 본다면, ‘봐라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할 것”이라고 농담을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