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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말의 가지가지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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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경제적으로 해치우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발음에서도 그런 속성이 잘 드러납니다. 준말(줄어든 형태)이 생기는 것은 그런 속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질서 없이 아무렇게나 줄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준말의 됨됨이를 살펴보면 매우 정연한 질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낱말의 끝소리가 탈락한 보기>
'어제-저녁'에서 '어제'의 끝소리 [ㅔ]가 줄여져서 '어ㅈ-저녁'이 되고, 여기서 [ㅈ]가 홀로 설 수 없으니까 '어'의 받침이 되어, 마침내 '엊저녁'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보기를 들어 봅니다. '그것-은'에서 '그것'의 끝소리 [ㅅ]가 줄어져서 '그거-은'이 되고, 그렇게 되면 조사의 홀소리 [ㅡ]가 줄어져 '그거-ㄴ'이 되어 마침내 '그건'이 됩니다.
'아니-하-'는 위와 같은 탈락이 연속적으로 두 군데서 일어나 '않-'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니'의 끝소리 [ㅣ]와 '하'의 끝소리 [ㅏ]가 줄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가죽-신'에서는 연이어 있는 두 소리가 함께 탈락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가죽'의 끝에 오는 두 소리 [ㅜㄱ]이 줄어져서 '가ㅈ-신'이 되고, 이것이 '갖신'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도식화해 보면 다음과 같이됩니다.

(1) 어제-저녁 → 어ㅈ-저녁 → 엊저녁
그것-은 → 그거-은 → 그건
아니-하- → 아ㄴ-ㅎ- → 않-
가죽-신 → 가ㅈ-신 → 갖신

'엇저녁, 갓신'으로 표기하지 않고 굳이 '엊저녁, 갖신'으로 표기하는 것은 'ㅈ'이 각각 원형태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낱말의 첫소리가 탈락한 보기>
'배냇냄새'(갓난아이의 몸에서 나는 냄새)라는 낱말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요? 이 낱말은 '배-안-잇('ㅇ+아래아+ㅣ+ㅅ'인데 고어 표기가 안 됨, 아래에는 *로 표시함)-냄새'가 줄어든 낱말로 보입니다. '안'의 첫소리 [ㅏ]가 줄어들고 'ㄴ'만 남아서 그것이 그 뒤의 '잇*>-앳'과 녹아붙은 결과로 보입니다.

(2) 배-안-잇*-냄새 → 배-ㄴ-잇*-냄새 → 배-ㄴ-앳-냄새 → 배냇냄새

<낱말의 가운데 소리가 탈락한 보기>
'바깥사돈'의 '바깥'에서 가운데 있는 소리 [까]가 줄어져서 '바ㅌ-사돈'이 되고, 그것이 다시 '밭사돈'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ㅌ'은 '바깥'의 흔적인 것입니다. (여기 '밭'은 '田'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3) 바깥-사돈 → 바ㅌ-사돈 → 밭사돈

<낱말의 앞뒤 소리가 함께 탈락한 보기>
'민며느리'라는 낱말의 말밑(어원)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려 있습니다마는, 내가 보기에는 '미리-온-며느리'가 줄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리-온-머느리'에서 '미리'의 끝소리 [리]가 줄어지고, '온'의 첫소리 [ㅗ]가 줄어지면 '미-ㄴ-며느리'만 남게 되고, 이것은 '민며느리'로 발음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 미리-온-며느리 → 미-ㄴ-며느리 → 민며느리

이처럼 준말이 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낱말의 끝소리가 줄어지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줄어드는 것이 일시적인 경우도 있고, 그로 인하여 새낱말이 생성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엊저녁, 않-, 갖신, 배냇냄새, 밭사돈, 민며느리' 들은 새낱말입니다.

- 리 의도 교수의 '이야기 한글 맞춤법'(2004, 석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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